고해성사의 은혜
김미숙 요안나 / 우동성당, 수필가
해마다 판공성사 기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편치 않다. 특별히 큰 잘못이 떠오르지 않을수록, 고백할 죄를 애써 찾아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미사와 기도,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성사는 형식에 머무르기 쉽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남의 죄 말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세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고백을 듣는 고해소를 떠올리면, 그 말씀이 얼마나 절실한 당부인지 알 것 같다. 창살 없는 감옥처럼 좁은 공간에서 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죄가 아닌 이야기까지 쏟아낸다면, 그것은 옆집 쓰레기까지 들고 와 한꺼번에 버리는 격이다. 그곳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세우는 자리이다.
한동안 내 삶은 비교적 평온했다. 큰 갈등도, 감정의 소모도 줄어든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왜곡된 말과 오해 속에서 신뢰가 무너졌고,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을 거칠게 만들었다. 변명조차 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조용히 그 자리를 물러났지만, 마음속에서는 상대를 단죄하며 스스로를 지키려 애썼다.
마침 그때가 판공성사 기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사 거리가 생겼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고해소 앞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리며, 성모님께 성사를 잘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동시에 ‘남의 죄’를 고백하지 않도록 최대한 이성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고백을 준비했다. 하지만 가림막 너머 신부님 앞에 앉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엉엉 울기 시작했다.
평소 울음과는 거리가 먼 나였기에 당황스러웠다. 어린아이가 아버지 품에 안겨 울음을 토해내듯, 고백보다 눈물이, 말보다 울음이 앞섰다. 그때 신부님의 “그리 힘든 일을 하느님께 고백하니, 얼마나 잘한 일이냐”는 한마디는 판단이 아닌 위로로 다가왔다. 고해소를 나서는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을 짓누르던 분노가 사라지고 오히려 조용한 회개의 마음이 생겨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상대를 피한 선택이 과연 참된 평화를 위한 것이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겼더라면 어땠을까.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고해성사는 죄를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햇볕에 빨래를 널어 말리듯, 자신을 하느님께 그대로 맡기는 시간임을 느끼게 되었다. 고해소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