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부산가톨릭신학원 교수
오래 전 “에레스 뚜(Eres Tu)”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스페인어 원곡인 이 노래는 한때 한국 가톨릭 교회 생활성가에서 “주님의 기도”로 개사되어 청년 미사 등에서 자주 불려지기도 했기에, 지금도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면 그 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노래가 유행했던 당시는 자세한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때라 원 가사의 뜻도 잘 모른 채, 그저 스페인어의 어감이 멋있고 멜로디가 마냥 좋아서 흥얼거리기도 했었다. 수십년이 지난 최근 불현듯 다시 이 노래가 생각나서, 이번에는 인터넷의 힘을 빌어 원곡의 가사를 찾아 찬찬히 음미해 보았다.
‘너는 ... 과도 같아’ 라는 구절이 반복되면서,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라는 이 귀한 존재가 내 삶에 선사하는 소중한 의미를 지극히 소박한 언어로 잔잔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몇 구절을 뽑아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너는 약속과도 같고, 여름날의 아침 같고 미소 같고 …
내 손에 떨어지는 빗물 같고, 상쾌한 바람 같고 …
한 편의 시와도 같고, 한 밤의 기타 소리 같고 …
내 샘의 물 같고 내 화로의 불꽃이고 … ”
그렇게 노래가 계속되다가 드디어 마지막 부분에 가면 다음의 가사가 나온다.
“너는 내 빵의 밀알이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때로는 빛나는 보석 같은 값비싼 물건에 견주기도 하고, 때로는 태양이나 별처럼 아예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에 비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 노래에서처럼 우리가 당연시 누리는 일상 속의 평범한 것들로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그만큼 더 소중한 존재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그 일상의 정점이다.
“너는 내 빵의 밀알이야.”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빵, 그 빵의 모양이 채 갖추어 지기도 전부터 내 몸으로 들어와 나의 생명이 되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 밀알.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모습을 지우면서까지 빵으로 만들어져 나의 양식이 되어주는 밀알.
원곡의 창작자가 종교적인 의미를 의도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노래를 음미하면 할수록 이천 년 전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가신 그분이 떠오른다. 간절한 목마름으로 하느님을 기다려 온 그분의 백성들에게 마르지 않는 생수, 생명의 빵을 남겨 주시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그 분. 노래가 끝난 후에도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넘어서는 깊은 울림이 남는다.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