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찾기와 순교자

가톨릭부산 2024.03.13 14:07 조회 수 : 3

호수 2804호 2024. 3. 17 
글쓴이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뿌리 찾기와 순교자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온천성당 · 전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족보는 시조부터 편찬 당대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가계기록(家系記錄)을 통칭한다. 특히 조선시대 족보는 양반 계급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잘 드러내고 공고하게 만드는 문화적 상징물이다. 당대 양반들이 족보 출간에 소비한 종이는 인구 1인당 세계 최고인데, 바로 족보가 갖는 이러한 함의(含意) 때문이다. 이처럼 양반들이 족보를 편찬 간행하는 일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성씨와 계보에 대한 지식은 보학(譜學)이라 불렸다. 이는 당대 양반이 그들의 지위에 걸맞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상식이었다. 오늘날 성씨와 본관에 관한 지식이 전통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인식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현재 일반인들에게도 자신들의 ‘뿌리찾기’에 족보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보자.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1,1-17)로 시작되고, 루카 복음서도 예수님의 족보(3,23-38)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의 경우, 예수님의 족보에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요셉까지 42명의 이름이 이어진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기점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명의 인물을 나열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의미와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이렇게 예수님의 가계(家系)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더 나아가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한 인간임을 말해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국천주교회도 고유한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천주교회사에서 이러한 신앙의 뿌리 찾기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순교자를 조사 연구하는 것이다. 천주교 수용 당시 순교자는 큰 박해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지켜야 했다. 이들 순교자들의 행적을 찾아 조사하는 일은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는 것이자,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천주교 순교자에 대한 연구는 까마득한 먼 과거에 있었던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 자신 안에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순교자를 찾아 떠나는 길은 바로 신앙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에 힘들고 긴 여정이 될지라도 멈추면 안 될 중요한 일이다. 오늘도 나는 그들을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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