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마을 이야기

가톨릭부산 2015.11.02 11:51 조회 수 : 28

호수 2005호 2009.08.09 
글쓴이 김양희 레지나 

숨은 그림 찾기다. 꼬불꼬불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계단 길을 오르다 맞은편에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옆으로 어깨를 돌려야 간신히 비켜간다. 만리산7길, 한겨울 눈비라도 얼어붙으면 다랑논처럼 가파른 이 경사진 길을 대다수 고령자인 주민들이 어떻게 운신할 수 있을지. 사람 사는 동네가 산 아래에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의 오만이 몸을 낮추는 지점이다. 이리도 빈한한 삶의 현실 앞에서 노령화 사회문제와 독거노인에 대한 관심? 그것은 애초에 화려한 망상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한다. 

중창 6길 막다른 골목 요셉 할아버지 네는 널빤지로 된 좁은 쪽마루가 놓여져 있다. 한여름 오전 해가 열어놓은 미닫이 사이로 뜨겁게 타고 있다. 당뇨병에 핼쑥해진 그는 손잡이가 날아간 녹슨 주전자에 찻물을 올린다. 고상 앞에서 함께 기도하는 심경이 더욱 절절해진다. 가슴으로는 간간이 추스르는 노인의 흐느낌이 전해져온다. 가파른 돌계단 맨 꼭대기에 있는 안나 할머니는 사람을 경계한다. 창호지가 벗겨진 쪽문을 설핏 밀어보니 안에서 TV소리가 나고 있다. 사람이 있다.! 세상에, 그렇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더니… 방안에는 퉁퉁 부은 할머니가 미동도 않고 브라운관을 웅시하고 있다. 벗어놓은 신발 옆의 목발이 주인의 불편함을 대변하고 있을 뿐. 방문이 열려도 무반응이요, 세상과는 무관한 눈빛이다. 

황혼이 비록 고달프다 해도 활달함을 잃지 않는 노년도 없는 것은 아니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 부지런한 성격의 황부자 할머니는 이름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아오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경을 원망 않고 옹골차게 끌어안았다. 스물일곱에 청상이 된 그가 고무공장에 나가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세파를 헤쳐 온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한 한 편 드라마다. 오늘도 그 인생역정을 들어주는데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바라는 바람직한 경제사회 구조는 어떤 것일까. 부와 기득권이 편중되고 가난한 이가 별로 없는 피라미드형? 소수의 상위층이 존재하고 다수의 빈곤층이 집중적인 눈사람형? 어떤 것이 더욱 이상적인 사회 구조인 지를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소시민의 희망은 지각없는 낭비에 흥청대는 부유층과 , 한 끼 밥그릇을 걱정해야하는 절대빈곤층의 격차가 심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바랄 뿐이다. 

티벳 산골의 소금밭에는 티벳 여인들의 땀과 눈물이 변해 소금밭이 되었다고 한다. 빈곤이 소금밭처럼 여물게 달라붙은 산복도로 비탈길을 걸어 나오며 나는 왜 티벳 여인들이 떠올랐는지. 인생이 히말라야 산정을 오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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