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을 찾아서

가톨릭부산 2015.11.02 15:41 조회 수 : 33

호수 2037호 2010.02.21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동굴을 찾아서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기자 estak@busanmbc.co.kr 

스마트폰, 아이패드, IP TV, 트위터, PIGS 재정위기, 출구전략...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솔직히 답해보시라. 머리 희끗한 세대들 가운데 이들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이 얼마나 될지. 난 직업 때문에 뉴스 모니터와 신문 스크랩까지 챙기지만 요즘 새로 나오는 용어들은 솔직히 어지럽다. 신상품들은 얼마나 빨리 바뀌는 지 1년도 안된 내 휴대폰은 벌써 구식이 됐다. 첨단을 자랑하던 미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자초하더니 이번엔 유럽이란다. 회사에서는 조직관리, 경비산출 등에 최신 기법을 도입하겠다니 자칫 한 눈 팔았다가는 뒤떨어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왜 세상이 변해야하는지, 누가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의 이익은 누가 가져가는지 제대로 따져 볼 여유조차 없다는 데 있다. 변화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합의를 하기도 전에 세상은 변한다. 원칙이 없으니 변칙이 판치고 반칙도 막을 방법이 없다. 변화의 페달만 밟으며 경쟁으로만 내달리는 요즘 세상은 마치 먹이가 부족한 정글 같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나, 미래의 주인인 청년들의 밥벌이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20년 전 쯤 뜻도 잘 모르고 읽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다시 접하며 울컥했다. 전쟁 같은 세상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이 찾아갈 동굴이 절실하다고, 동굴 없는 광장은 공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난 광장에서 지고나면 술 마시고, 고함 쳤지만 속만 쓰렸고 목만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분주한 광장에 서 있으려면 침묵 속에 스스로를 대면하고 세상에서 입은 상처를 보듬는 동굴의 시간을 거쳐야 함을. 그리고 기억한다. 2 천 년 전 예수도 메마른 광야로 홀로 걸어가 고통 속에 유혹을 물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인류구원의 공생활에 나섰음을.

사순절이 시작됐다. 부활의 영광에 앞서 교회는 회개를 명한다. 욕심을 치워내고 일상을 되짚어 하느님 내신 자녀의 모습을 찾으라는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끄럽고 화려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발걸음도 보이고 마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스스로를 만나려면 피정도 좋고 미사, 혼자 하는 여행도 좋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면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출-퇴근 시간에 기도하기, 샤워하며 하루 반성하기, 잠자기 전 묵상하기 등등. 곧 광장에서 부활의 영광을 전해야 할 우리들인 만큼 사순기간 스스로를 대면할 동굴 입구를 잘 찾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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