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자유이용권

가톨릭부산 2015.11.02 15:38 조회 수 : 59

호수 2033호 2010.01.24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하늘나라 자유이용권

매주 미사 참례는 하지만 영성체를 못 하는 선배에게 고해성사를 권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어차피 죄 짓고 살 게 뻔한 데 지을 죄 좀 더 짓고 나중에 볼게.” 고해성사 보고 나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 마음도 흔들렸다. 고해성사 볼 때마다 긴장하고 괴로워할 게 아니라 통 크게 한번 용서 받고 그 다음부터 마음잡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약삭빠른 인간이여!) 마음이 무너진 난 선배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죄 짓고 용서받는 데도 잔머리를 굴리다니 난 어쩔 수 없는 불량신자인가 보다.

아담과 이브 이후로 인간은 죄의 굴레 속에 산다. 성모 마리아가 아닌 다음에야 원죄 없는 사람 없다. 세례로 원죄를 벗어도 나약한 인간은 늘 죄의 그림자를 안고 산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세 살 아이도 거짓말한다. 죄 짓고 괴로워하는 게 인간이다. 거기다 요즘 세상이 어디 만만한 곳이던가. 줄 세우기식의 입시교육은 매정한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가르친다. 자본의 논리는 과정이 부도덕해도 결과만을 평가한다. 물질의 유혹은 곳곳을 선정적으로 만들고 대화를 외면한 폭력적 문제해결이 ‘효율’로 인정받기도 한다. 진흙탕 세상에 발 딛고 살면서 흙탕물 한 방울 닿지 않겠다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어느 시인은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며 핀다고 했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야 꽃이 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 받고 유혹에 흔들리며 인생의 꽃을 피워 간다. 온실이 아니라 노지에서 핀 꽃이 생명력이 강하듯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상처와 흔들림을 이겨 냈을 것이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우리는 흔들림을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죄와 유혹 앞에 흔들리는 한계 많은 존재임을 인식해야한다. 그게 구원의 첫 번째 조건이다. 

하느님이 용서하지 못 할 죄는 없고 천국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했다. 부모 마음은 죄 많은 자식도 내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 자녀인 우리는 하늘나라 자유이용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느님은 용서를 통해 너그러운 자애를 보여 주실 것이다. 기쁨이 없는 신앙인은 율법에 사로 잡혀 주님사랑을 느끼지 못한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 없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허락하신 풍요로운 사랑을 만끽하자.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도 선물하셨다. 기쁨이 차고 넘치는 하늘나라를 예약한 사람들답게 즐겁고 당당하게 하느님이 내신 세상을 살자. 나는 선배에게 한 번 더 고해성사를 권해 볼 생각이다.

탁은수 베드로(부산MBC 기자) estak@busa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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