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교회 안에 흐르는 피
지난 달, 홋카이도(北海道)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연피정을 하고 왔다. 한국의 각 교구에서 파견된 선교사제들과 함께 한 피정이었다. 서울 1명, 의정부 3명, 제주 2명, 부산 2명 모두 8명의 사제들이 함께 했다. 피정 지도로는 이한택(요셉) 주교님께서 이 먼 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주셨다.
방식은 매일 던져지는 한 편의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곱씹으면서 자신이 파견된 곳의 상황에 맞추어 느낀 바를 나누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간 선교사로서의 마음가짐과 그 활동에 있어서 막힌 배수로는 없는지 살펴보고, 또 물이 흘러야 될 곳에는 상담과 함께 물꼬를 트여주는 식이었다. 이 피정 안에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얻었다. 먼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는 든든한 동료들을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피정장소가 다름 아닌 트라피스트 였다는 것이다.
기도와 활동! 마리아와 마르타! 이것은 신앙과 선교에 있어서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서에 있어서 왜 기도가 먼저여야만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어느 신부님의 강론 중에, 「기도 없는 활동은 자기 교만으로 흐르기 싶고 활동 없는 기도는 공염불이 되기 싶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정 장소가 봉쇄 수도원이었다는 점은 늘 현장에서 움직이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밤 8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교회가 마땅히 바쳐야 할 시간경을 모두 바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들의 기도에 힘입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먼 길을 이동할 때, 사람들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면서 선교를 하다 보면 제 때에 바쳐야 할 기도를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서품 때도 약속했듯이 하느님 앞에서, 공동체 앞에서 내가 바쳐야 할 기도를 이름 없는 수도자들이 세상 어느 한 곳에서 묵묵히 바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뚱아리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기도는 교회라는 몸 안에 흐르는 피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 몸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을 때 우선은 아픈 곳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멎을 때 교회는 늘 기도하시는 성자의 지체로 존재하기 힘들다. 참으로 고마운 것은, 이 기도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황에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렵고,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 새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은총은 늘 시련의 얼굴을 하고 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