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대

가톨릭부산 2015.11.02 16:13 조회 수 : 37

호수 2061호 2010.08.08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독대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기자 estak@busanmbc.co.kr

왕조 시대 임금이 신하를 혼자 불러 둘이서만 중요한 국사를 논의하던 일을 독대(獨對)라고 한다. 비민주적인 일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요즘 정치권에서도 독대가 있다. 정파의 수장들이 독대를 통해 정치적 타협을 이루기도 하고 최고 권력자와의 독대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둘이서만 만난다는 건 다른 사람과는 달리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은밀하고 중요한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애 해 본 사람은 안다. 마음속에 점찍은 사람이라면 단 둘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연애의 시작이란 걸. 둘이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어야 연애의 진도가 나간다. 사회 생활에서도 관계의 방법과 종류는 다양하지만 보통 단둘이 만나는 관계는 친밀함과 이해의 정도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과의 독대는 어떤 모습일까? 성체 조배나 평일 미사, 레지오 활동 등 열심인 신자들도 많지만 나 같은 불량 신자는 고작 아침 기도나 주일 미사 정도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다. 그나마도 세상의 딴 생각에 빠져 온전한 마음을 다 바치지 못할 때가 많다. 헐레벌떡 미사 시간에 맞춰서 성당에 들어왔다가 파견 성가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신자들도 많이 봤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성당 주차장은 혹시라도 뒤질세라 서둘러 빠져나가는 차들로 뒤엉키기 일쑤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미사 끝 말씀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생명을 내시고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이지만 세상의 소소한 일들보다 하느님과의 독대에 점차 성의가 없어지고 그 횟수 마저도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도가 ‘하느님과 마주하는 대화’라고 했으니 기도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하느님과 독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은 성당에서 이뤄져야 제 맛인 것 같다.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 “배 아프면 내과에 가고, 이 아프면 치과에 가고, 마음이 아프면 성당에 가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의 집은 세상에서 얻기 힘든 위로와 치유가 가득한 곳이다. 딱히 위로 받거나 간절히 바랄 일이 없어도 그냥 하느님의 집에 머물다보면 좋고 어지신 하느님을 닮아 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마음에 둔 이성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회사에서 사장님이 날 따로 찾는다고 하면 옷매무새를 고치고 당장 달려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느님은?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가슴에 피를 철철 흘리고 계신 하느님이 날 기다리고 계신데도 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차렸다면 당장 성당으로 달려가거나 시간이나 장소가 여의치 않다면 눈 감고 손부터 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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