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쌀독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매년 카라스야마(烏山)라는 분이 우리 성당에 강연회 겸 모금을 하러 온다. 필리핀 다바오에서 '하우스 오브 조이(House of Joy)'라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돌보는 아이들이 50명 가량 된다. 그가 필리핀으로 건너간 것은 17년 전의 일이다. 당시 정부의 농업 연구소 직원으로 필리핀 농촌 교육 지원을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왔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너무나도 살갑고 따뜻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무언가 이 사람들의 마음에 보답할 길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결정한 것은 집을 정리해서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장소는 민다나오! 정국이 안정되지 않아서 때로는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생겨나는 곳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큰 상처를 입고 고아원에 들어온다. 어떤 아이는 군인들의 손에 엄마의 목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들어왔다고 한다. 과연 무엇으로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하고도 남을 아이들의 마음을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하게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1년, 2년을 함께 살면서 어느덧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한다.
힘든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져왔던 돈도 바닥나고 후원도 끊겨서 당장 내일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먹일 쌀조차도 떨어진 것이다. 자기는 어른이니깐 며칠 굶는다 치더라도 아이들을 굶긴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였지만, 그때는 참으로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했단다. “주님, 이제는 한계를 느낍니다. 혹시 제가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당신 뜻에 맞지 않는다면 당장 그만 두겠습니다. 하지만, 당신 뜻이라면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다고 했던가?(히브 4, 12참조) 다음날 기적이 일어났다. 유럽의 한 봉사단체로부터 쌀이 도착한 것이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우스 오브 조이'의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도움을 보냅니다. 괜찮다면 아이들이 평생동안 먹을 쌀을 지원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도 신앙생활 중에 많은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 많은 기도 중에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고 있었던가 돌아보게끔 한다. 아직 세상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이들을 돌보는데 목숨을 건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마르지 않는 쌀독처럼 하느님의 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