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성모님, 당신은...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루르드를 다녀왔다. 1858년, 시골처녀 벨라뎃다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발현 이후 현재까지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때문에, 여느 순례 때보다 환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출발 당일, 공항에 가보니 4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신자, 비신자, 성모님을 좋아하는 개신교 부부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이는 사람이 있었다. “유우”라는 이름의 자폐증을 가진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중증에 가까운 이 친구를 보니 ‘아, 이번 순례는 만만치가 않겠는데... 혹시, 이 친구 병이 낫지 않으면 어떡하나’하고 조바심마저 생겨났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중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다른 순례객들은 “어디어디 성당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등 자기소개도 하면서 끼리끼리 잘만 어울리는데 이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팔짱만 끼고 있었고, 사람들도 그런 그에게 좀처럼 다가가길 꺼려했다. 그러다가도 성지에 도착해서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하고 성모찬송가를 부르면 신기하게도 곧잘 따라부르곤 했다. 성모님께만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1주일간 순례를 마치고 왔지만, 이 친구의 병은 낫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유우씨의 자폐증은 18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해 처음으로 루르드를 다녀왔지만, 이상하게도 유우씨는 “내년에도 또 가겠다”라는 것이었다. 부모입장에서 병에 걸린 자식을 멀리 여행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극구 만류를 했지만, 그때 유우 군의 당찬 한 마디는 “성모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유우 군은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력으로 여행비를 마련하고 루르드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4년간 유우씨는 매년 루르드를 순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성모님께서 이 친구를 이렇게 살려주시는구나!’
신자건, 비신자건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단순히 신체의 아픈 곳이 나았다고 해서 그 삶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지는 못한다. 어쩌면 성모님께서는 유우 군에게 더 큰 것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생명! 비록 자폐증으로 살아가지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스스로의 신앙을 훌륭하게 지켜가는 유우씨를 보면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이사 55, 8)”라는 성서말씀이 섬광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5월, 성모성월을 지내면서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강생의 신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신 성모님의 겸손을 새롭게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