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랑할 때

가톨릭부산 2015.11.02 15:48 조회 수 : 43

호수 2045호 2010.04.18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지금은 사랑할 때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기자 / estak@busanmbc.co.kr 

인적이 드문 숲길을 걸을 기회가 있었다. 나무들은 줄기마다 싱그러운 연두색을 머금고 있었다. 몇 해 전 태풍에 뿌리 채 뽑혀진 나무들도 있었는데 자연의 복원력을 위해 그대로 두는 것이라 한다. 비, 바람에 쓰러져 하늘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누운 나무들도 분홍색 꽃잎을 달고 있었다. 허리가 꺾인 아픔을 딛고 피워낸 꽃송이. 그 놀라운 생명력에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 졌다. 고통과 고난의 시기를 지나 부활의 신비를 보여주신 주님은 아무도 찾지 않는 아픈 나무들에게 먼저 생명과 사랑의 결실을 허락하시어 무뎌진 사람의 마음에도 사랑의 싹을 돋게 하신 것일까. 

교회는 지금 축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활 대축일 이후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고 찬미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른다. 하지만 부활 대축일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금방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많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지만 부활 계란 먹고 나면 부활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이건 곤란하다. 사순 기간 참고 희생하며 지내온 나의 일상을 지금이야말로 부활의 기쁨으로 다지고 채워야 할 때가 아닌가. 지금은 닫힌 생각과 마음의 문을 열고 아이와 같은 기쁨으로 어두움을 이긴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전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의 신비를 처음부터 믿고 전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의 지식과 상식에만 의지해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부활의 기쁨을 전하기보다 무엇을 할지 몰라 막막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직접 나타나시어 부활을 확인시켜 주시고 기적도 보여 주셨다. 그 때서야 제자들은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고 부활의 신비와 놀라운 사랑을 만방에 전하게 된다. 요컨대 사랑을 전하는 데 중요한 건 알량한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천진난만한 믿음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순수한 마음이 관건이다. 

마침 교구는 냉담교우 초대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하느님께 초대하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말 그대로 ‘마음이 차갑고 어두운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밝은 사랑을 전하는 것이 꼭 부담되고 힘든 일만은 아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일, 이웃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일, 더 작게는 밝은 미소로 주위를 대하기, 칭찬해 주기, 솔선수범 하기 등등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부활의 희망을, 그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일상에서 널리 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기쁨과 사랑으로 오신 주님이 내 뒤를 떡하니 받쳐주고 계심을 믿기만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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