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단풍 들것네

가톨릭부산 2015.11.04 07:47 조회 수 : 84

호수 2130호 2011.10.23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오메, 단풍 들것네

탁은수 베드로

가을에는 산에도 물결이 인다. 억새가 흐드러진 승학산이나 장산에 오르면 금방 알수 있다. 낮에는 은빛으로, 해질녘에는 금빛으로 억새의 물결이 출렁인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하나에도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는데 가을빛이 가득 찬 가을 산엔 바람이 불 때마다 울긋불긋 황홀한 물결이 인다. 햇살을 받아 붉게 반짝이는 단풍의 물결은 하늘이 손수 전시하는 가을날의 화려한 수채화다. 가을 산의 빨간 단풍은 일상에 지친 도시의 서정을 화들짝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하다. 

단풍의 붉은 빛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신록의 계절이 지나 햇빛이 줄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은 스스로 광합성을 포기하고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한다. 줄어든 수분과 영양소로 힘든 겨울을 나기위한 준비의 과정이 푸른 나뭇잎이 붉은 색 옷을 갈아입는 이유다. 힘든 겨울을 지나, 돌아 올 봄에 새순을 틔울 나무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줄여가는 나뭇잎의 희생이 붉은 단풍이다. 마침내 영양분의 모든 통로가 막혀 단풍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면 가장 낮은 곳에서 나무의 뿌리를 덮어 겨울을 견디게 한다. 단풍의 죽은 몸은 거름이 되어 최후의 양분까지 나무에게 베푼다. 단풍의 붉은 빛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고, 새순의 희망을 잉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핏빛 절규다. 그래서 가을의 단풍은 허리가 휘어가는 부모의 깊게 패인 주름살과 닮았고, 구원의 완성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닮았다. 

문호 괴테는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라고 했다. 빛의 파장에 따라 흡수나 반사의 작용을 거쳐 우리 눈에 특정한 색이 보이는 것이다. 아름다운 색을 내기위해 빛은 수많은 파장을 제 몸속에 지녀야 하고 때로는 토해내는 고통을 겪어야한다. 일출의 장엄함, 형형색색의 꽃잎, 싱그러운 바다의 물빛도 모두 이런 고통을 거친 결과다.

주변에 널린 수 만 가지의 빛깔도 제 나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세상에 고통 없는 아름다움이 어디 있을까. 고통 없는 사랑은 또 어디 있을까. 앞으로 난 고통을 탓하고 피하기보다,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라는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싶다. 고통을 감내하며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며 늙어 가면 좋겠다. 마침내 내 인생의 무게가 다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돌아갈 때 이왕이면 고운 단풍 빛으로 물들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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