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인
김양희 레지나
두 노인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 예핌 노인은 부자 농부였는데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태우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엄격하고 야무진 성미였으며 일흔이 되었는데도 등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인 에리쎄이 노인은 평범한 농부로서 젊어서는 목수 일을 했으나 나이 든 후로는 아들과 함께 집에서 꿀벌을 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낙천적이었으며 성격이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몇 주일째 계속 걸었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물도 좀 마시고 싶었으나 예핌은 걸음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한 농가에 이르렀을 때 에리쎄이는 잠시 들어가 물을 얻어 마시고 갈 테니 먼저 가라 이르고는 그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침 그때 그 집안에서는 온 식구들이 굶주림 끝에 돌림병을 앓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에리쎄이는 성지순례를 단념하고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로 했다. 그는 그집 식구들이 병고에서 일어난 후 먹고 지낼 식량과 땔감을 마련해놓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서 일찍 돌아온 것을 본 가족들이 의아해 물었으나 ‘나는 주님의 인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도중에 돈을 잃어버려서 더는 갈 수가 없었단다.’ 하고는 농가에서의 일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먼저 길을 떠난 예핌은 나무그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잠시 졸고 있는 사이 혹시 그가 지나치지나 않았나 싶어 발길을 더욱 재촉했다. 성지에 도착한 그는 혼잡한 성당에 들어가 미사를 참례하려고 하는데 제단 맨 앞에 있는 자기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 둘레에는 둥근 원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지에서 그는 이와 같은 친구의 뒷모습을 세 번이나 보았지만 그에게로 밀치고 다가가면 그 모습이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순례에서 돌아온 예핌은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몸만 갔다 왔구나. 이 세상에서 죽는 날까지 자기 의무를 사랑과 선행으로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다.’ 하고.
이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혹여 나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닐까. ‘몸만 갔다 온다는 것’. 피정에서 돌아와 영혼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나 역시 몸만 갔다 온 것이다. 미사에 참례 하는 이 순간에도 정신은 딴 데 두고 몸만 성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야훼다. 누가 또 있느냐.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이사 45, 7) 이처럼 영혼에 와 닿는 하느님의 말씀을 몸이 아닌 마음속 깊이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