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승천 밤의 손님

가톨릭부산 2015.11.04 01:43 조회 수 : 41

호수 2123호 2011.09.11 
글쓴이 김기영 신부 

성모승천 밤의 손님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성모 승천 대축일! 오카야마(岡山)성당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유카타(浴衣)축제가 한바탕 벌어졌다. 필리핀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처음에는 두루마리처럼 둘둘 마는 일본 의상이 뭐가 그리 신기했던지 연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미사 후, 푸짐한 먹거리와 함께 기분도 업(UP)되어서 돌아왔다. 배웅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니 밤 11시. ‘금년 대축일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하고 하루를 되새김질하고 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성당이죠? 밤 늦게 죄송합니다만, 지금 좀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아...예” 잠시 후, 자동차 한 대가 성당으로 들어왔다. 마중을 나가니 50대 남성이 쭈뼛거리면서 들어온다. “어서오...” 술냄새가 확 풍겼다. 얼굴을 보니 가을 홍시가 따로없다. 고민했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오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가는 길에 사고가 날지 모르니 일단 술은 깨워서 돌려 보내야겠다고 판단을 했다. 

사연인즉 이전부터 좋아하는 외국인 여성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이미 결혼한 다른 남자의 아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여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데, 마음 한 켠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성당을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성령의 이끄심과 함께, 파랑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참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면서 노래하던 파랑새가 아무리 이쁘다고 해서 새장 안에 가두어놓는다면 그 파랑새가 행복해 할까요? 사과를 심은 곳에는 사과가 나고, 포도를 심은 곳에는 포도가 나는 것처럼 당신이 처음부터 사랑의 씨앗을 심는다면 그 여인과의 삶도 행복해지겠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욕망으로 시작한 그 삶의 끝은 비록 그 여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들 보지 않아도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남자는 황소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부님, 사실 저는 마누라와 아이들 4명을 죽이고, 20년을 복역한 살인자입니다. 감옥에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몇천 번, 몇만 번을 생각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려 주었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그의 손을 잡고 성모상 앞으로 갔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어머니... 처음 불러 봅니다”이런다. 그 역시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버려진 채 사랑을 모르고 자라왔던 것이다. 사랑이란 죄의 악순환을 끊은 것이고, 우리는 그 사명에 부름받았다. 승천 밤, 뱀의 머리를 밟고 계신 성모님의 모습이 유난히 늠름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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