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합시다
탁은수 베드로
모임에서 건배사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술잔 앞에 놓고 긴 건배사는 분위기 깨기 십상이다. 간단하면서도 주목을 살 수 있는 건배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 내가 자주 하는 건배사는 ‘빠-삐-용’이다. 교회 사목에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다. ‘빠삐용’이란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란 뜻이다.
빠지지 맙시다.
공동체의 기본은 참여에 있다. 가톨릭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하느님 나라의 한 가족이다. 포도를 알갱이로 팔지 않고 한 송이씩 팔 듯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 앞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듯이 공동체에 내가 빠진 자리를 대신 메워줄 사람은 없다. 성당의 큰 봉사자가 아니어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신자의 의무이다.
삐치지 맙시다.
간혹 성당에서 인간 관계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성당의 봉사자나 때론 수도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당은 친목 단체가 아니다.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내가 좋아할 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나의 친소와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형제끼리 싸우면 좋아할 부모 없듯, 하느님도 반목하는 자녀들을 곱게 보실 리 없다. 내 생각만 주장하며 공동체에 불화를 일으키고 투정을 부리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대해야겠다.
용서합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주님을 배신하고 세속의 즐거움에 빠져 지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는 고통 속에서도 주님은 언제나 나를 용서하셨다. 행여 자존심이 상하거나 쑥스러워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힘든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는 건 어떨까.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 용서와 화해의 방법까지 일러 주실지 모른다.
여름의 뒷걸음질이 끝나면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귓가에 흰머리가 숭숭한 성당의 주일학교 친구들. 신부님, 수녀님께 혼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가끔씩 만나 한잔 하자고 권할 생각이다. 물론 그때도 내 건배사는 ‘빠삐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