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118호 2011.08.14 
글쓴이 김기영 신부 

聖心(성심), 내 마음 속의 냉장고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여름 신앙학교가 끝났다. 일정은 1박 2일, 멀리는 못가고 본당에서 합숙을 했다. 테마는 ‘예수님과 함께 모두가 사이좋은 성당 친구되기!’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리엔테이션 때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시간 잘 지키기, 형, 누나는 동생들 잘 돌보기 등 뭐는 해라, 뭐는 하지마라는 식이었는데, 왠지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 같아서 죄다 없애버렸다. 대신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스스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유도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오후 2시, 근처 야외 수영장으로 가서 더위를 식혔다. 안전 요원의 준비 체조를 따라하며, 왠지 작년보다 작아진 수영복에 조심스런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가, 삑! 하고 호각 소리가 나면 첨벙첨벙, 퐁당퐁당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애어른이 따로없다. 돌아오니, 봉사자 자매들이 큼지막한 수박을 썰어놓고 함박 웃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꿀맛같은 수박을 한 입씩 베어먹는 꼬마들의 얼굴에 세상의 온갖 행복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이 보였다. 
불고기 파티로 저녁을 먹는 동안, 캠프파이어 준비를 했다. 주택이 밀집한 곳이라 좁은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소방서에서 자제할 것을 요청해왔다. 불안하면 안전요원을 파견해 달라고 하니깐 그냥 하란다. 뭐니뭐니해도 캠프파이어의 백미는 “Fire(불)”인데 말이지. 주변이 어둑해지고, “한 처음에...” 낭랑한 목소리로 창세기가 봉독된다. 잇달아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라고 3번 소리치면 옥상 십자가에서 깡통 불덩어리가 휙! 하고 날아와서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이어, 육각형으로 쌓은 장작 안에는 분수 불꽃이 하나 가득, 오색찬란한 불꽃을 뿜어내면서 순간 장관을 이루어낸다. “와~”하고 입이 딱 벌어진 꼬맹이들의 얼굴이 꽤나 볼만하다. 
마침기도 시간. 달아오른 녀석들의 얼굴에는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제대 앞에 빨간 하트 모양의 예수 성심과 못을 준비했다. 양심 성찰이다. 부모님께 거짓말한 것, 친구랑 다투었던 것, 미사 빼먹었던 것 등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만큼 “예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라는 반성과 함께 그 개수만큼 못을 성심에 찔러 넣었다. 상처 난 영혼에 연고를 바르는 느낌으로 묵주기도 1단을 바쳤다. 자는 동안 아픈 놈,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놈 없도록 파견 강복을 했다. 어느새 이놈들의 눈망울이 말똥말똥하다. “잠 다 깼냐?” 물으니, 한 녀석이 피식 웃으면서 이런다. “신부님, 시원~ 합니다”
그렇다. 우리 영혼의 피서지는 해운대도 광안리도 아니다. 이녀석 말마따나, 예수 성심이야말로 내 영혼을 싱싱하게 지켜주는 마음 속의 냉장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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