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에게 신앙을!

가톨릭부산 2015.11.04 01:40 조회 수 : 20

호수 2117호 2011.08.07 
글쓴이 나금실 수산나 

이주노동자들에게 신앙을!

나금실 수산나 / 노동사목

얼마 전 미사시간에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한 신자를 보았다. 그는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었고 함께 온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성당 내 다른 신자들도 별반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당 주변에 크고 작은 공장이 많이 있어 이주노동자들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성당에 미사를 참례하거나 방문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곁으로 온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한국의 발전된 모습이 ‘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동경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주노동자들은 오기 시작하였다. 이주노동자란 ‘이주를 하며 일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3D 업종에서 일하러 오는 동남아 노동자들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동정심과 우월감, 그리고 호기심 등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뭔가를 베풀어줘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이들을 친구나 이웃, 신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고용기간이 끝나면 자신들의 모국으로 돌아간다고 혹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살기 원하고, 또 살고 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하기를 꺼려하는 직종에서 산업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사회 구성원이며, 시장의 구매자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이들의 자녀 수는 온전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으나, 시민단체들에 의하면 1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으로써, 공교육을 받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1,4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정규 교육권 밖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당 주일학교에서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찾아 보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젠 교회에서도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함께 신앙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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