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149호 2012.02.26 
글쓴이 김기영 신부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김기영(안드레아)신부

늦은 밤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지적 장애가 있어서 염려를 하던 형제였는데,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연락을 하니, 술 취한 목소리로 지금 약을 먹고 시내를 방황하고 있단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참고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파출소로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서둘러 일본인 신자 부부에게 연락을 하고 부랴부랴 함께 오카야마 시내로 향했다. 1시간을 달려서 파출소에 도착하니 그 형제는 이미 구급차에 실려 있었고, 곧장 병원 응급실로 뒤따라 갔다. 
접수를 마치고 응급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1시간 이상 지나서 위세척도 못한다고 한다. 대신 링거를 한 대 맞고 제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한다. 2시간 남짓, 의식이 돌아오고 피검사, 약물검사를 마치더니 의사가 부른다.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주님, 감사합니다’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알콜 중독이 있으니 전에 있던 정신과 의료센터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어있었다. 
의료센터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니 굳게 닫힌 철창문이 열리고, 건장해 보이는 간호사가 마중을 나왔다. 비틀거리는 그 형제를 부축해서 다시 담당의에게 데리고 가니, 어쩌다가 이 시간에 또 왔느냐고 그런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입원 절차를 마쳤다. 아마도 금주 프로그램에 다시 들어갈 모양이었다. 성당으로 돌아와서 동행해주었던 신자 부부와 함께 성모상 앞에서 감사기도를 바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 날 밤 소동은 일단락 맺었다. 
사실 이 형제는 그리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결혼 후, 지금은 4번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어떤 사랑도 받지 못하고 시설에 맡겨진 채 자라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딱히 의지할 곳 없이 헤매다가 우연한 기회에 전임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마음을 다잡아 한동안 성실히 살았다. 금주에 대한 의지도 있어서 ‘AA’라는 금주모임에도 때때로 참석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 갔다가 누군가와 크게 마음 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달래지 못해서 애써 참아왔던 술에 몸을 담그고, 심지어 약까지 먹는 극단으로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기도 중에 이 형제의 영세명이 비안네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본당 사제들의 주보이신 비안네 성인의 전구를 구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지금 역시 뾰족한 답은 없다. 다만, 사랑으로 뭉친 공동체 형제들과 힘을 합쳐서, 이 형제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이 길을 함께 걷고자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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