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140호 2012.01.01 
글쓴이 김기영 신부 

세계평화, 섬기는 자의 마음으로부터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세계 연방 종교인 대회를 다녀왔다. 종전 후, 민족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커지고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 각국의 지식인들이 전 세계인들을 하나의 국가적 개념으로 묶고자 시작한 운동이었다. 몽트뢰 선언(1947)과 함께 자국의 이익을 넘어선 ‘인류애’라는 공동 목표에 호소하고 그 열매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사상 최초로 두 차례 원폭의 재해를 경험한 국가로서 전쟁 억제에 대한 생각이 시민들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로 아직 헌법 9조, 이른바 ‘평화 헌법’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각 종파의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평화라는 테마는 변함없이 공통된 논의 대상이고, 이에 가톨릭 교회도 일본 사회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톨릭, 이슬람, 불교, 신도 등 6개의 종파가 쿠로즈미교 본부에 모였다. 이날 대회 가운데, 힐링(healing) 콘서트가 열렸는데, 이는 평화의 상실로 상처입은 모든 이들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기를, 특히 동일본 대재해의 피해로 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치유가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열린 것이다. 
각 종파의 성직자들이 저마다의 성가, 찬불가를 불렀다. 우리 신부님들은 ‘Veni Creator, Sequentia, Salve Regina’ 이렇게 3곡을 불렀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그것도 성당이 아니라 신사에서 부른다는 것에 왠지 모를 떨림이 전해왔다. 멀리 나가사키에서 세분의 신부님이 합류했는데, 성가를 연습하면서 이미 서로의 마음이 모아지고, 평화가 전해져옴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악보 담당 신부님이 마지막 리허설까지 늦은 관계로 연습용 악보를 새로 복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조용히 다녀오면 될 것을 괜히 쓸데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여기 나보다 서품 늦으신 분도 계시지만 굳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순간 뜨끔했다. 가뜩이나 히로시마에 새 교구장님이 오시고, 주교 문장 속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Non Ministrari, Sed Ministrare)”는 말씀을 보면서 ‘그래, 나도 여기 섬겨야지, 섬기는 자가 돼야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건만, 결국 방심한 탓에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속의 자신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참 부끄러웠다. 후배 신부님들 앞에서 무엇하나 선배로서 스승 예수님의 닮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에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계 평화 역시 내 마음이 먼저 섬기는 자의 그것이 될 때 시작되고 완성됨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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