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친구

가톨릭부산 2015.11.04 08:00 조회 수 : 68

호수 2137호 2011.12.11 
글쓴이 김양희 레지나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친구

김양희 레지나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또 겨울의 문턱이다. 무성한 잎을 다 떨구고 차가운 칼바람 앞에서 맨몸으로 우뚝 선 나무들의 당당함을 보며 사람의 영혼도 하느님 앞에서 저처럼 남루함을 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보는 계절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저마다 자기 짐을 지고 나온다고 했다. 그 짐마다 무게가 다 다르다는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내 짐이 다른 이보다 무겁다고 해서, 혹은 가볍다고 해서 짐을 진 지게를 바꿀 수가 없으므로 우리는 주어진 시간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홉을 가진 자는 열을 채우기 위해 내어놓기가 더 어렵다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이는 아예 내 것이 없었던 고로 욕심을 부릴 줄 모른다. 기부금을 희사하고 자선을 베푸는 이들 가운데 고생과 땀의 가치를 아는 이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재물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그러나 부(富)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른 것이 아닌가. 
어떤 이가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갔다. 누더기를 입고도 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달동네 빈한한 사람을 돌보던 이는 금빛 찬란한 계단을 오르는데, 종을 부리고 살던 자신은 천 길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주일 헌금에도 인색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으나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천국의 실체를 다룬 책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친구는 ‘선행’밖에 없다고 했다. 사랑했던 친구도, 피를 나눈 부모 자식과 형제도, 장례식장까지는 따라와도 더는 함께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선행과 자선의 행위만이 마지막까지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가, 그분 앞에서 나를 증언해 줄 것이다.
대림의 촛불 앞에서 나와 동행해 줄 마지막의 친구를 떠올려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득 없는 빈약함이, 비어 있는 두 손을 부끄럽게만 한다. 그분이 나를, 내가 그분을 마주 바라볼 때를 위해 나는 무엇으로 이 빈손을 채울 것인가.
어느 현자는 말했다. ‘생이란 단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라고. 덕을 닦을 수 있는 시간이라곤 이 짧은 기간이 전부인 것이다. 자선 주일이 아니더라도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없는지 항시 살펴볼 일이다.
요한은 자신은 빛이 아니라, 빛이신 하느님을 증언하러 왔던 ‘광야의 소리’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었다. 자선을 하되 드러나지 않게,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앞세울 수 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더욱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호수 제목 글쓴이
2155호 2012.04.08  매일매일 부활 탁은수 베드로 
2154호 2012.04.01  만우절 하창식 프란치스코 
2152호 2012.03.25  바오로 가신 길 따라 걸었더니... 김기영 신부 
2151호 2012.03.11  부활이 온다 탁은수 베드로 
2151호 2012.03.11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는 본당 공동체 이상만 사비노 
2150호 2012.03.04  기쁨과 희망의 계절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2149호 2012.02.26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김기영 신부 
2148호 2012.02.19  성전에서 봉헌하는 이주노동자 미사 이창신 신부 
2147호 2012.02.12  10대가 아프다 탁은수 베드로 
2146호 2012.02.05  작은삼촌 하창식 프란치스코 
2145호 2012.01.29  주님, 참 오묘하십니다 김기영 신부 
2143호 2012.01.22  청소년들의 노동과 인권 김태균 신부 
2142호 2012.01.15  함께 꾸는 꿈 탁은수 베드로 
2141호 2012.01.08  마음껏 찬양 드리자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2140호 2012.01.01  세계평화, 섬기는 자의 마음으로부터 김기영 신부 
2139호 2011.12.25  하늘 잔치의 초대장 이창신 이냐시오 신부 
2138호 2011.12.18  지키기 못한 약속 탁은수 베드로 
2137호 2011.12.11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친구 김양희 레지나 
2136호 2011.12.04  좋은 순례하고 싶으세요? 김기영 신부 
2135호 2011.11.27  깨어 있어라 박주미 막달레나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