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가톨릭부산 2015.11.04 08:58 조회 수 : 114

호수 2175호 2012.08.19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그녀는 예뻤다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뉴스총괄팀장, estak@busanmbc.co.kr

그녀는 예뻤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역도 선수 장미란 이야기입니다. 4년 전에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시상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습니다. 억울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들지 못한 바벨에 손 키스를 남기고 퇴장했습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 그녀는 이제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미소로 떠나는 그녀에게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날 언론은 장미란의 올림픽 고별 경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전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인해 받은 벌이 아니다.” 중년이 점점 깊어지고 있어서일까요? 이 대사가 한동안 귀에 맴돌았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연결한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나이 먹는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일까요? 그보다는 “너희는 늙어봤니? 나는 젊어 봤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 듦이 유쾌해 보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일을 주님 나라에 한발 한발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젊음도, 늙음도 하느님이 주신 제한된 시간 안에서 겪게 되는 일입니다. 어차피 제한된 시간이라면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지금 당장에라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된 행복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찾는 일이 인생의 최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된 행복은 욕심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젊음을 안달해봤자 소용없듯이 말입니다. 대신 감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시간에 감사하면 젊음도, 늙음도 모두가 은총입니다. 
장미란은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제 몸보다 몇 배나 무거운 바벨을 수도 없이 들어 올렸을 것입니다. 가끔은 우리도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힘이 들고 실패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장미란의 이번 승부처럼 우리의 실패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겁니다. 늘 내 뜻대로 살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참된 행복은 죽음을 넘어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젊음을 보낸 대신 주님 품에 가까워지는 은총을 얻고 있습니다. 장미란이 올림픽 무대를 떠나며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인생의 마지막에는 남겨진 세상의 것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맙고 행복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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