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새해 선물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나는 청소를 잘 못 한다. 사무실이나 방 주위도 책과 서류들, 옷가지로 어질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을 잘하는 편이라서 필요할 때는 그때그때 잘 찾아서 써오곤 했다. 그래서 더욱 정리정돈을 잘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 젊은 엄마가 아들내미 유치원 크리스마스 파티 때 찍은 DVD라면서 보라고 빌려주었는데, 그만 어디에 놔두었는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흔히 잃어버린 물건이 있을 때, “성 안토니오,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전구를 청하면 잃어버렸던 물건을 발견하는 은혜를 받기도 하는데, 가지고 있는 CD, DVD 자료를 모두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낭패였다. 그냥 자료도 아니고, 아들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또 하나의 앨범인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물론 그 전에 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행동으로 옮길 만큼 자극이 강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불상사가 생기고 나서 쌓여있던 책이나 서류, 굴러다니는 박스들을 둘러보니 도저히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물건들이 “주인님, 제 자리는 어디인지요?”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개중에는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될 것들도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은총이 있었다. 지난 연말 사목회의 때, 사제관 리모델링 안이 나온 것이다. 3년 전, 본당 건립 30주년을 맞이해서 1층 성당과 홀, 교리실을 모두 깨끗하게 새로 도배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2층 사제관은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예산에 여유가 돌자 교우들이 다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사실은 주님께서 그들의 입을 통해 “정리 좀 하고 살거라”라고 꾸지람을 하시는 듯했다.
꼬박 3일간 혼자서 짐정리를 했다. 세상에 피정도 이런 피정이 없었다. 이 본당에 온 다음 날부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많은 반성과 감사의 마음이 번갈아가며 느껴졌다. 그리고 장장 2주간에 걸친 공사가 끝이 났다. 빗물이 젖어 누렇게 말라붙었던 벽지는 새하얗게 바뀌고, 보푸라기가 풀풀 날리던 통로의 카펫은 연말 시상식 레드 카펫 마냥 삐까번쩍거린다. 마치, 새롭게 파견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 해를 시작하라는 은총도 주시는 듯했다. 그것은 새집을 꾸며주신 하느님과 교우들에게 은혜에 보답하며 성심껏 복음 선교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