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숨은 새로움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 취재 본부장 park21@chosun.com
얼마 전 주일미사 때였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신부님께서 커다란 성체를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찬 제정과 축성문’ 중 ‘내어줄 내 몸’이란 말이 평소와 다르게 들렸습니다. ‘주님의 몸’이란 말이 뇌리에 꽂히는 듯했습니다.
평화 예식이 시작됐습니다.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아, 주님께서 자신의 평화를 주셨는데 나는 받았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내 그 생각과 다른 선율이 가슴에 흐르는 듯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내 평화가 아닌 주님의 평화가 내 안에 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미사 참례 때 가끔 겪는 일입니다.
미사엔 통상문이 있습니다. 거의 판에 박힌 듯한 공식 같은 거지요. 그래서 저는 미사 통상문이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 생각하곤 합니다. 매일 반복되어 감흥이 없는, 공기나 물처럼 늘 곁에 있어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그런 일상 말입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는 ‘도’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미사 때마다 듣는 같은 단어, 문장이지만 어느 땐 전혀 다른 각도에서, 종전과 완연히 다른 의미로 날아오는 화살이 되기도 합니다. 이날 미사처럼 말이지요. ‘성호경’이 절절한 기도가 되는 날도 있습니다. 짧은 단어 하나가 소설 한 권의 문장을 능가하는 때가 있는데 제겐 이날이 그랬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이란 말이 영혼을 울립니다.
레지오 기도문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매일 매일 똑같은, 별다른 것 없는 ‘나 자신’이 새롭게 느껴지고 다가옵니다. 그러면 온누리도 새로워진 것 같답니다. 하나가 전체로 이어지는 신비인 셈이지요. “내 영혼이 †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주님의 구원에 내 마음이 봄놀 듯 기뻐 뛰노는 느낌을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우린 일상, 말, 단어, 문장들을 머리에 새겨두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심장에 새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머리에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세월 속에서 그 안의 단맛을 느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말, 문장 등은 머리와 또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건 내가 하기보다는 그분이 새겨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미사 통상문이 심장에 새겨진 말로 다가올 때 일상은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