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머문다는 것
노옥분 글라라 / 시인, 수필가 gll1998@hanmail.net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조용하던 여자중학교가 북소리와 함성, 손나팔 소리로 들썩였습니다. 초록 잔디로 잘 꾸며진 운동장이 그렇게 소란스러운 건 지난 겨울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난 후 처음입니다. 그곳에는 복색을 제대로 갖춘 학생들의 난타 공연이 한창입니다. 저도 출근길 걸음을 멈추고 구경나온 사람들과 함께 연두색 철망이 둘러쳐진 곳에 바싹 다가섰습니다.
체육복 일색이던 우리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꽃무늬 긴 바지에 반소매 티셔츠, 머리띠에 포인트를 주거나 위트 넘치는 글귀로 시선을 끄는 반 등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까불대며 응원을 주도하는 학생의 재치에 구경꾼들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출근길 마음도 덩달아 흐뭇합니다. 가을 하늘을 쏙 빼닮은 그 아이들에게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K-pop 가수를 닮고픈 소녀들의 서툰 몸짓과 웃음소리만이 종일 운동장을 메웠습니다.
지난 10월 25~26일, 본당에서는 성전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주차장과 앞마당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기증받은 다양한 물품과 풍성한 먹거리로 화개장터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천막을 치고 장을 보며 구역별로 할당된 일을 잘도 해냈습니다. 직장을 핑계로 교중미사 해설 후, 겨우 두어 시간 떡볶이 파는 일을 거든 저로서는 미리 사 둔 티켓으로 점심을 대접하고 먹거리들을 사느라 더 신이 났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쉼 없이 음식을 준비하는 자매들과, 마련된 탁자 사이를 부지런히 돌며 빈 그릇을 수거하고 식탁을 닦아내는 형제들, 종일 달그락거리며 식기를 씻는 교우들의 손발이 어쩜 그리도 조화롭던지. 그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고 교회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사랑만이 가득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두 공동체의 이야기에서 지난 여름 본당의“복음적 가훈 콘테스트”수상작 글귀를 떠올립니다. 90여 점의 작품 중 전시를 통해 신자들이 직접 선정한 최고의 가훈은 라파엘 형제님의 “내 안에 머물러라.”(요한 15, 4)였습니다. 공동체의 온전한 일치와 개인의 내적 일치가 필요한 때, 우리들의 영원한 쉼터인 그리스도께서 요한 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