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던져진 존재’들에게 부치는 가을 편지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금의 내가 처한 시대와 환경과 상황 속으로 ‘내던져짐을 당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날 때부터 훌륭한 인격의 부모에게서 금수저로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채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나는가 봅니다. 하늘에서 내던진 씨앗이 싹을 틔우기에 딱 알맞은 옥토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를 피우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갈밭의 결핍과 갈증 속에서 온통 가시로 뒤덮인 꽃을 피운 엉겅퀴를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네가 갖고 있는 것을 누리고 있진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라는 닉 캐러웨이 아버지의 조언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보다 더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던져진 밭을 원망하기보다는, 엉겅퀴 같은 생명력으로 열심히 물을 찾아내고 싹을 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했나 봅니다. 그의 삶의 시간이 비록 우리보다 짧지만 결코 짧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의 시간은 우리가 여유롭게 보내던 시간에도 빠르게 흘러갔을 테니까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봄과 여름의 찬란했던 생명이 최고의 순간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찬란한 잎들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해 대지의 양분이 될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가을의 형형색색은 죽음을 목전에 둔 자연의 눈부신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합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과는 달리, 인간은 죽음의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찬란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멸의 하느님께서 필멸의 인간에게 주신 기회이자 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하게 던져줄 테니, 한 번 색다르게 살아보고 오거라.”
그러니 지금 내가 던져진 곳이 어떠하든 겸허히, 또는 인내심 있게 살아내 봅시다. 나와는 다른 곳에 던져진 씨앗들을 부러워하거나 비판하지도 말고요.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이 말하듯, ‘진득하게 살다 보면 어차피 죽을 건데’, 나도 남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조금 더 선하고 후회 없이 진득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생을 다하는 날, ‘그 고귀한 존재를 흙 속에서 찾지 맙시다.’ ‘어차피 이 세상 모든 것은 죽어야 하고, 그러면 자연을 지나 하느님의 나라로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가을,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과 지금을 살아내는 모든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