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다니요?

가톨릭부산 2015.11.02 15:51 조회 수 : 15

호수 2047호 2010.05.02 
글쓴이 김기영 신부 

안되다니요?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4월을 기준으로 일본은 회계연도가 바뀐다. 이 맘 때쯤 일본 교회도 새로운 사목위원들과 한 해 본당 운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어떤 성당을 보면 십 년을 넘게 본당 회장직을 맡고 계신 분도 있는데 지구별로 열리는 선교 사목 위원회에 나가보면 더욱 가관이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어느 성당 누구 누구입니다. 지금 본당 부회장을 회계를 맡고 있습니다”라고 소개를 받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회의를 나가보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직책으로 와서 앉아 있다. 무슨 이유일까?

큰 성당이야 사람이 없는 말이 변명일 수 있겠지만, 공소보다 작은 규모의 성당에서는 정말로 사람이 없다. 그래서 몇 명 없는 신자들 중에 3년씩, 5년씩 돌아가면서 봉사직을 맡고 근근이 교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 해, 우리 성당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부회장직을 뽑는데, 마침 적임자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냉담을 풀고 나온 외짝 교우 자매였다. 면담을 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부터 늘어놓기 시작한다. 남편의 반대, 자신의 병 등 도저히 봉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하고 대답을 한다. 그래서 다시 오늘 돌아가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허락해 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건강도 주실거라고 말했다. 겁도 없이...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엄청난 말을 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얼마나 묵주알을 굴렸는지 모른다. 

주일날, 이 자매님을 다시 만났다. “신부님, 남편이 허락을 했어요. 게다가 자기도 될 수 있는 한 돕겠대요. 그리고 오늘 아침 기도도 같이 했어요." "그럼, 병은?" “그동안 병 때문에 성당을 쉬었지만 요 며칠간 신부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이 병이 당신께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런다. ‘아~주님!’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왜 이리도 믿음이 약했던가 스스로를 탓했다. 지금 이 자매님은 봉사 활동에 재미가 붙어서 신나게 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있는 교리반에 퇴근하고 바로 오느라 저녁을 챙겨먹지 못하고 오는 예비자들을 위해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준비해오고, 자신도 열심히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신앙이라는 내 인생 최고의 보물을 그냥 묻어두고 산다면 다시 파내길 바란다. 부활을 체험하고 싶다면 안될 것이라는 내 생각을 접어두고, 주님 뜻에 온전히 맡겨드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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