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너희와 함께!”

가톨릭부산 2024.04.11 13:59 조회 수 : 4

호수 2808호 2024. 4. 14 
글쓴이 하창식 프란치스코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창식 프란치스코
사직대건성당·수필가
 
   ‘지란지교’라 하면, 늘 유안진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곧, 지란지교를 나누는 벗이지요. 가족이나 친지일지라도,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어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말이 날까’ 두려워서입니다. 상대방을 믿고 나눈, 속 깊은 대화가 돌고 돌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게 세상 사는 모습인가 봅니다. 
 
   수년 전 이야기입니다. 사월 중순 즈음에 한 학생이 면담을 신청해 왔습니다. ‘말이 날까’ 두려워 가족에게조차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던 차에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믿고 상담하러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여러 날 학생과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주 특별한’ 어려움으로 가슴앓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어느 정도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어, 제가 더 기뻤었던 경험입니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래, 참 힘들었겠구나.”하며 몇 번 등을 토닥거려 준 것밖에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말 날까’ 걱정하지 않으면서, 믿음 가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전부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의 마음속엔 작지 않은 ‘평화’가 찾아왔을 거라 믿어 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에 불현듯 그 학생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부활 시기였던 그 봄날 어느 때, 학생과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그 인사 말씀을 묵상한 기억이 새삼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학생을 기억하며 오늘 복음 말씀을 다시 묵상하다 보니, 이 시간 어디에선가 “말 못 할” 고민으로 홀로 가슴앓이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고 싶어졌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말 날까’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속 아픔을 함께 나눌, 지란지교의 벗이 없는 이웃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ㅇㅇㅇ야, 내 평화가 너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다정하게 그분들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분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필리 4,7 참조) 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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