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96호 2024. 1. 28. 
글쓴이 조수선 안나 
“없는 이에게 베푸는 일을 미루지 마라.”(집회 4,3)      
 

 
 
조수선 안나
연산성당·시인 suny4616@hanmail.net
 
   그날은 참 추웠다. 안전 안내 문자는 한파 주의보 예보로 강추위가 예상되니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였다. 특별히 노약자들께서 꼭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모자, 장갑,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착용하라고 하였다. 
 
   난 추위에 약해서 사계절 중 겨울나기가 제일 힘들다. 언제인가 몹시 추운 날 새벽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왔다가 미사 참례 중에 쓰러진 일도 있어 그 이후로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는 날에는 완전 무장을 한다. 모자는 물론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겹겹이 싸매고 집 밖을 나선다. 
 
   얼마 전 그날 예보대로 북극 한파 주의보가 내렸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볼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녹색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너 사람 건너 앞에서 초라한 차림의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몸을 한층 움츠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 할머니 추우시겠다. 얼른 가서 내 모자라도 씌워드리자!’ 생각하고 할머니께 가까이 가려고 했지만 막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할머니께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아 갈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이 나를 붙잡았다. ‘저 할머니가 싫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쓰던 것을 드린다고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 어쩌나?’ ‘내 모자를 벗어드리고 나면 나도 추울 텐데.’ 나는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었음에도 내 걱정을 하였다. 
 
   그 짧은 시간 그러는 사이에 녹색등이 켜지고 할머니는 굽은 등으로 맹추위를 맞으며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셨다. 할머니가 걸어가신 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스스로 뉘우쳤다. ‘내가 잘못했구나! 사람을 돕는 일에 그렇게 머뭇거리고 남의 시선부터 생각하다니!’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없는 이에게 베푸는 일을 미루지 마라.”(집회 4,3)  
 
   입으로는 이웃 사랑을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상 안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아낌없는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좀 더 크게 눈을 뜨고 마음을 넓혀 세상 곳곳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이 따뜻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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