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가톨릭부산 2023.10.25 14:13 조회 수 : 11

호수 2781호 2023. 10. 29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 언론인 
fogtak@naver.com


 
   큰딸이 고3 때쯤이었습니다. 천사 같던 딸들이 작심한 듯 냉담을 선언하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부모의 신앙에 반기를 드는 것이냐며 큰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여 입시에, 이후에는 취업에 매달리는 딸들을 보며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갈등 끝에 딸들의 냉담을 묵인했습니다. 대신 언젠가 주님 품에 다시 돌아올 거라는 딸들의 말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결승전, 부상으로 쓰러진 딸을 보며 관중석의 어머니는 오열하며 “기권해도 돼”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딸 안세영 선수는 힘줄이 끊어진 무릎에 테이프를 감고 기적처럼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딸을 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자식 키우는 나에게도 전해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십자가 고통을 바라보는 성모님의 마음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딸들이 질풍노도에 휩싸였던 시기에 “예수님도 사춘기를 겪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이후에도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향한 충고가 잔소리로 받아들여지고 점점 말 안 통하는 꼰대가 되어가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힘들게 버텨온 내 노동의 수고로움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의 무게가 힘들게 느껴질 때 마리아의 배필이자 예수의 양부로 성가정의 보호자였던 성 요셉의 신심을 떠올립니다. 
 
   같은 가장 입장에서 성 요셉에 대해 동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구원을 위한 보호자의 사명을 묵묵히 실천하셨습니다. 약혼녀의 임신, 이집트 피난의 고난 등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뜻을 믿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가족들을 믿고 지켜봐 주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아버지는 죄 많은 나를 지켜보시며 착한 아들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십니다. 나도 두 딸의 냉담이 끝나기를 기도하며 하느님 품에 돌아오겠다는 딸들의 말을 믿고 좀 더 기다려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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