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위에서 만난 목자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whitenoise99@hanmail.net
얼마 전 키르기스스탄 여행 때의 일이다. 그날도 낡은 지프차를 타고 산속으로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해발 3,000m가량 되는 높은 산을 넘어 이동 중이었다. 그러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길에 고장이 난 듯한 트럭과 나이 지긋한 남자 둘이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나를 향해 묻는다. “잠시 멈추고 무슨 일인지 알아봐도 될까요?”
이야기인즉, 두 남자는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산 아랫마을 목동으로 가축들을 데리고 여름내 산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몇 마리 양이 돌아오지를 않아 찾으러 산 위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만 차가 고장이 나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도움을 요청하고자 기다린 게 하루가 지났다. 주로 말을 타고 가는데 그날은 날이 저물어 트럭을 탄 것이 실수였다. 게다가 워낙 외진 길이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가 처음이었단다. 그런데 이 목동들, 전날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준비한 물과 간식이 다 떨어져 그때까지 굶고 있었단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저녁 식사로 가져온 피자와 물이 있었다. 연신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그 목동들이 방향이 같은 차량을 만나기를, 그것이 안 된다면 음식과 물의 힘으로 걸어서 다시 거처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가던 길을 나섰다.
목동이 곧 목자다. 무리에게서 벗어난 채 길을 잃은, 어리거나 힘없는 가축들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는 게 이들의 일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한다. 내가 만난 그 목동처럼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그에게 도움을 건네야 한다. 내 먹을 것을 나누고 갈 길이 같으면 태워주면서 말이다. 그래야 그 목동도 힘을 내서 길 잃은 어린 양을 구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창조한 이 세상은 그렇게 선한 기운으로 돌고 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버렸더라면 그 목동은 더한 굶주림과 추위에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길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그 목동이 바로 예수님일 지도 모른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주님을 뵌 것이 틀림없다. 감사하다며 웃던 그 미소가 분명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