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어라
오지영 젬마 / 반여성당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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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가는 길에는 소나무가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걸어왔던 그 길이 배수지 공사가 시작되면서 공영주차장이 자리하고 위에는 운동기구가 있는 체육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넓지 않지만 한 바퀴 돌 수 있는 곳과 아름다운 정원이 생겼다.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간단한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새벽에는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강사 덕에 하루의 시작은 생기가 돈다. 장산 자락에 있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 창문을 연다. 창을 통해 자연의 경치를 빌리는 중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지는 요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건 은총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나버린 방처럼 마음의 방도 허전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십자성호를 긋고 지낼 때가 있다. 그럴 때 신부님이 그랬다, 그냥 걸어보라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마음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다 보면 기쁨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님과 함께 나름대로의 길을 걷기로 했다. 장산자락에 있는 집을 핑계 삼아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길을 걸었다. 포슬포슬한 흙길이다. 그 사이로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숨소리가 살짝 높아진다. 그럴 때 앞으로만 걷던 길을 뒤돌아서게 되면 온몸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조화로운 높낮이의 집들이 탁 트인 시야에 들어와 답답한 가슴속을 맑게 해준다. 오목조목하게 지어진 집들이 우리들의 삶인 것 같아 마냥 정겹다. 다시 앞으로 걷다 보면 흙과 어우러진 소나무도 만나고 도토리나무도 만나게 되는 산길로 접어든다.
혼자 걸어가는 길은 침묵의 시간이지만 때로는 자연의 소리가 침묵의 시간에 함께하기도 한다.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는 시편기도가 저절로 되뇌어진다.
운동화 소리가 귀에 익을 때쯤이면 체육공원에 도착한다. 간단한 운동기구들과 하나하나 눈맞춤을 하다 보면 약간의 땀이 흐른다.
내려갈 시간이다. 내려가다 보면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이 많다. 정확한 이름들은 모르지만 머리로만 아는 이름들을 기억하며 내리막을 걷는다. 예수님의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느림을 친구삼아 걷게 된 길이다.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