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후라이 하나의 행복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whitenoise99@hanmail.net
어릴 적 시골에서는 대부분 가정에서 닭을 키웠다. 소위 알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집에서 낳은 그 알조차도 먹을 수 없는 집이 많았는데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그 알을 모아서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드는 데 쓰다 보니 집에서는 좀처럼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암탉이 숨겨놓은 따뜻한 알을 찾는 일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애미의 본능으로 암탉은 교묘하게 자신의 알을 숨겼고 어린 나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구석구석에서 알을 찾아냈다. ‘오늘은 내 도시락에 후라이 하나 넣어주려나.’하면서. 그러나, 기대는 늘 실망이었다. 오빠와 언니까지 각각 하나씩 주다 보면 언제 한 광주리 모아서 돈을 만들겠나. 그러니 제삿날이나 소풍날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갓 찾은 알 하나를 조심스레 두 손에 받쳐 들고 정제로 들어가다가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무르팍 깨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손에 들고 있던 귀한 달걀 하나가 그만 바닥에서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아이고!” 할매는 손녀 다친 건 안중에도 없이 아까운 달걀 하나가 흙바닥에서 버려질 요량인 것만 아쉬워서 혀를 찼다. 다행히 바닥 위 달걀노른자는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할매는 숟가락을 꺼내 들고 그 노른자를 가능한 한 터뜨리지 않게 조심조심 걷어냈다. 흙이 좀 묻었지만 괜찮다. 그리고, 그 깨진 달걀은 후라이가 되어 그날 내 벤또 밥 위에 고이 얹혔다. 그러니, 그날 보따리 가방 허리춤에 둘러메고 학교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어땠겠나. “느거 아나? 나도 오늘 벤또 안에 달걀 후라이 들었다 아이가!”
이제 우리는 먹을 것도 사는 것도 많이 넉넉해진 세상에서 산다. 그러다보니 달걀 후라이 하나에 ‘행복’같은 걸 느낄 일도 없다. 이전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마냥 행복해했는데, 이제는 더 크고 더 많은 걸 가져도 그다지 행복한 줄 모르고 산다. 그러고 보니,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보물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보물을 늘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흙이 묻지 않은 깨끗한 달걀 후라이 두 개를 먹으려 한다. 명절도 제삿날도 소풍날도 아닌데, 달걀 후라이를 두 개씩이나 먹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실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