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고, ‘주님 성탄 대축일’이 다가왔습니다. 2,000년 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은 처지가 되시기 위해 비천하게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하지만 이 대축일은 과거사만을 기념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새롭게 태어나신 그분을 맞아들이고 기뻐하는 대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를 공동체와 더불어 봉헌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 대축일인데, 2020년 성탄 대축일은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는 것 같고 조금 허전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올 한 해 우리가 너무 움츠리며 힘겹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열 달이 더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 창궐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힘들다’ ‘어렵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방역수칙 준수’ 등의 말들을 하도 들어서 이제는 지겹기도 하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지쳐있고,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기는 할까?’ 걱정하면서도 얼른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삶은 물론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평일과 주일 미사는 물론 성주간과 성삼일, 부활 대축일 미사도 공동체가 함께 봉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구 신앙 공동체는 이 비상시기 동안 방송 미사, 성경 읽기, 선행과 자선 등을 통해 신앙의 길을 찾으며 지내왔습니다.
이 어려움은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온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의 욕심과 오만 때문에 저질러진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있습니다. 우선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산업화, 과학화라는 미명 아래 지구의 온난화와 더불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가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여 이웃 나라의 어려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국의 이익만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징표의 의미를 찾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도 주십니다.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 먼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삶을 계속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올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탄 밤 미사 복음의 한 구절인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라는 말씀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천사가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일러준 말씀입니다. 오늘 탄생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주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다. 너희가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내가 잘 알고 있다. 오로지 나만 믿고 나에게 의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아파하고 그 고통에 함께 하겠다.” 이 말씀이 바로 아기 예수님의 성탄 선물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는 이 어려움을 이겨낼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풍성한 성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더 큰 빛이 비추리라는 희망을 안고 힘차게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