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환호를 반기지 않으셨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마태 23,37).
사실 군중은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을 기대하며 환호하였을 뿐입니다. 기대에 어긋나자 단숨에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2천 년 전의 고함은 오늘도 들립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익명으로 달리는 무수한 댓글들을 보면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의 함성이 다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득이 되고 마음에 들면 영웅으로 칭송하고, 손해가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를 드러내어 거칠게 욕하며 처단하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군중의 거짓 환호와 성난 함성에 대하여 정치인들은 권력과 표를 의식하여 진리를 외면하기 쉽습니다. 마치 빌라도가 주님께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으며 냉소하였듯이 말입니다(요한 18,38).
환호하고 고함치는 군중에 대하여 주님께서 취하신 행동은, 그들을 두둔하거나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여 고난을 받고 목숨을 바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하셨으며, 그렇게 주님은 당신이 진리임을 드러내셨고,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당신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요한 18,37).
오늘 우리가 과감히 벗어나고 맞서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군중의 환호와 성난 고함입니다. 우리가 동참해야 할 행렬은, 환호와 고함에 맞서 수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과 그분을 따라 수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본받아 진리를 위해 일신의 이익을 버리고 수난의 길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품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사랑은 어떤 말에 동조하여 환호하거나 성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은 박해를 무릅쓰고 백성에게 드러내는 진리이며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오늘은 ‘주님 “환호” 성지 주일’도 아니고 ‘주님 “메시아” 성지 주일’도 아닙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