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는 사건이며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고백이 선포되는 사건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ㄴ) 하늘에서 전해지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고백이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고백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로 더럽혀진 것을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의 예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을 필요도, 정화될 필요도 없는 분이셨기에 세례를 받을 필요 또한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가 받을 세례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요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낮추시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세례에 담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곧 우리를 보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늘 손익 계산이 분명합니다. 사랑하기에 앞서 항상 어떤 조건과 이유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할수록 늘 모자라고 목마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은 나의 이익, 이유보다는 늘 사랑하는 이가 우선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항상 먼저 사랑하십니다. 오늘 세례 사건처럼 아무런 계산 없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 당신 마음에 드는 자녀로 생각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 사랑의 방식이 예수님을 통해 모두를 채우고도 넘쳐나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그 사랑을 배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사랑할수록 늘 부족하고 목마른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을 만나 모두를 채우고도 넘쳐나는 넉넉한 사랑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배우는 은총의 자리가 되도록 축복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축복의 세례를 받은 신앙인답게 새로운 한 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키워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