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71호 2021.10.03 
글쓴이 한윤식 신부 

문자로 기록된 규정과 보이지 않는 근본 정신

 
한윤식 신부 / 오륜대순교자 성지사목

 
   오늘 복음은 율법 규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소개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은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의 맥락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남녀의 혼인이라는 관점에만 제한하여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율법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정신을 찾고 이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예수님,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더 중요한 것을 보라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글로, 문자로 기록된 규정과 원칙은 사람의 눈에 명확히 드러나 보입니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깔끔합니다.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 그래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확연하게 구분 지어 줍니다. 잘 지킨 이에게는 그 대가로 심적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주고, 잘 지키지 못한 이, 어긴 이에게는 반대로 실망감과 불안함을 가져다줍니다. 
 
   반면 규정과 원칙의 근본 정신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하고 성가십니다. 누가 그것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실상 잘 사는 사람을 못 사는 사람으로 보이게도 하고, 못 사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기에, 부단히 애를 써야 합니다. 찾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찾았다 하여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 진위를 둘러싸고 의견의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근본 정신입니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규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근본 정신을 찾고 헤아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남다름은 바로 이점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의 눈에는 드러나는 남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며, 나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많은 규정과 원칙보다 그 근본 정신, 참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합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691호 2022. 2. 6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file 계만수 신부 
2690호 2022. 1. 30  우리는 예언자입니다. file 정상천 신부 
2689호 2022. 1. 23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장하는 교회 file 윤기성 신부 
2688호 2022. 1. 16  오지랖의 영성 file 김준한 신부 
2687호 2022. 1. 9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file 신문갑 신부 
2686호 2022. 1. 2  주님 공현의 삶 file 김태형 신부 
2684호 2021. 12. 26  성가정, 자신을 버리는 만큼... file 권동성 신부 
2683호 2021. 12. 25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알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file 신호철 주교 
2682호 2021. 12. 19  복됨과 행복의 관계 file 박규환 신부 
2681호 2021. 12. 12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file 이강영 신부 
2680호 2021. 12. 05  환희의 잉태 file 김영환 신부 
2679호 2021. 11. 28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다시 오시는 예수님 file 이창신 신부 
2678호 2021. 11. 21  왕(王)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십자가(+) file 김기태 신부 
2677호 2021. 11. 14  종말과 준비된 삶 file 이강우 신부 
2676호 2021. 11. 7  다른 이들보다 더 하는 삶, 믿음을 더하는 삶을 위하여 file 장용진 신부 
2675호 2021. 10. 31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file 김태환 신부 
2674호 2021. 10. 24  정보혁명과 전교 주일 file 송현 신부 
2673호 2021.10.17  욕망과 자유 file 조영만 신부 
2672호 2021.10.10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file 송제호 신부 
2671호 2021.10.03  문자로 기록된 규정과 보이지 않는 근본 정신 file 한윤식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