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오른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주라고 하십니다. 또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기란 어렵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뺨을 대 주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본당에서 가끔 신자분들을 만나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리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는데 안 됩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는데 그게 됩니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이러한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나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은 세상천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다니는데 정작 나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너무 괴로울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원수를 내 앞에 두고 차마 그를 용서하지 못해서 나의 영혼과 내면 상태만 계속 황폐해지는 이 안타까운 악순환을 되풀이하기를 한평생... 이제는 좀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찌 한 걸음 내딛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는 왜 나에게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그를 용서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어쩌면 안 되는 용서를 용서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그래서 용서가 안 되는 그러한 부족한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완전함을 가지라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곧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아는, 자신을 앎에 있어 완전함을 가지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