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여왕을 떠나보내며 왕실 찬가 “God Save the King”을 부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에게 승리와 행복과 영광을 주시고, 오랫동안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에게 우리의 법을 지키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항상 마음으로 소리 내어 노래하게 하소서. 신이시여, 왕을 보호하소서!”
이 노랫말 때문인지 70년을 함께한 여왕을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련했습니다. 이 시선으로 왕이라는 존재를 봅니다. 의지가 되어주는, 질서를 지키는, 평화로 이끌어야 하는, 그래서 늘 신께서 함께하셔야 하는 분이 ‘왕’이시겠지요. 가장 힘센 사람이지만, 더 큰 분의 도움을 청해야 하는 부족함이 왕이 가진 힘의 균형을 잡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킹-달러’라고 불리는 돈에도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무엇으로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이)를 설명해야 할까요? 가장 적절한 말이 ‘왕’일 겁니다. 멋진 사진을 보며 그림이라 하고, 멋진 그림은 사진 같다고 하는 우리입니다.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표현을 빌리는 것이겠지요.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왕’(王)이라는 단어는 도끼에서 유래했답니다. ‘왕’(한자)이든, ‘킹’(영어)이든, ‘쾨니히’(독어), ‘렉스’(라틴어), ‘멜렉’(히브리어), ‘라자’(동남아어)이든 ‘왕’이라는 말은 도끼, 낫, 칼 등의 무기에서 유래했답니다. ‘언제든지 나의 목을 벨 수 있는 자’, 나의 생사를 정할 수 있는 자라는 의미가 ‘왕’입니다.
이 무서운 힘이 공정하지 못할 때 불행과 억압이 따랐고, 올바를 때면 평화와 행복이 왔습니다. 누구나 기꺼이 온 마음으로 찬양하게 만드는 힘이 ‘왕의 권위’고, 이 ‘왕의 다스림’(나라)을 지켜 주시는 분은 더 크신 분, 하느님(신)이십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saver)의 승리와 영광 그리고 다스림 속에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