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
조성제 임마누엘 신부 / 생명·환경사목 전담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코페르니쿠스라는 학자가 등장하여 ‘지구는 둥글고 스스로가 빙글 빙글 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만고 불변의 진리는 단순한 어느 학자의 주의, 주장에 머문 사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는 당시 척박했던 서양인들의 삶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안겨다준 사건이 되었습니다. 즉 동물의 똥이 거름(퇴비)이 되는 순환 농법을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에게 10세기 경의 식량 사정은 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던 밀 생산은 단작 피해와 점점 줄어드는 농경지 탓으로 식량 확보를 위한 도시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은 질병을 동반하였고 페스트와 말라리아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라지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신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는 근거가 되었고, 마침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대륙이 아니라 천지창조 이래 이미 존재했던 아메리카 대륙은 이후 그들 유럽인들의 식량과 자원 에너지의 창고가 되었습니다.
콜럼버스 일행을 하늘에서 보내주신 천사로 맞이했던 토착민들에게 유럽인들은 군대를 파견하고 땅을 빼앗고 식량을 착취하고 인디오들을 살해하고 노예로 삼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앞세운 점령군들의 진출은 미국을 정점으로 근대에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오늘날 서양인들의 근대화의 뿌리는 이렇듯 아메리카 대륙의 노동력과 식량, 자원 위에 세워진 착취 문화이며 점령의 역사인 셈입니다.
천년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평화를 노래하다가 이후 천년은 예수를 앞세운 탐욕과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다시 평화를 얘기해야 합니다. 통찰력 있는 생태학자들과 미래를 예견하는 석학들은 말합니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소비 추세라면 한 세기 안에 지구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최대의 포식자가 사라지면 지구는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서운 얘기면서도 또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생명은 먹이가 있어야 삽니다. 무기물을 동물의 먹이인 유기물로 변화시키는 식물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생산자입니다. 생명을 유지시키고, 정화하는 것은 식물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소비자이며, 포식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극악한 포식자고 소비자입니다. 농사는 상징이 아닙니다. 먹이가 없으면, 생산자가 없으면 생명은 죽습니다. 농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하는 것이라 합니다. 농업의 가치는 협력하고 자립하고 하늘의 뜻을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복음의 가치도 같습니다. 우리 안의 그리스도(공적인 삶)가 점점 커지고 나는(탐욕)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