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에 가려진 농민
이동한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반여성당
장면 1
11월 11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빼빼로 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날이 되면 학생들은 '빼빼로'란 과자처럼 날씬한 몸매와 죽죽 뻗은 롱다리가 되라고 기원하며 서로 그 과자를 부지런히 주고 받는다.
장면 2
11은 한자로 '十 一'로 표시하는데 이를 이어 붙이면 흙" 土"자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국가는 11월 11일을 '흙의 날' 즉 '농업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아마 십중팔구는 모를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설명이 이렇다. "농업이 국민 경제의 근간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매년 11월 11일이다. 주관 부처는 농림수산식품부이며, 각종 기념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풍년 농사를 축하하고또 한 해 동안 농업 발전에 이바지한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산업훈장 대통령·국무총리·농림부장관 표창을 수여한다." 쉽게 말해 농민들에게 '상주고 잔치 열어주는 날'이라는 뜻이다.
장면 3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이날을 통하여, 점차 피폐해져 가는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창조 질서 보존의 중요성을 거듭 되새기고 있다." 그런데 왜 농민 주일이 7월 둘째 주도 아니고 첫째 주도 아니며 셋째 주여야 하는지,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농민 주일을 제정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는 농민과 농촌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어느듯 농민 주일이 제정된 지도 햇수를 헤아려보니 25주년 '은경축'을 맞았는데도 말이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중 당대에 아니면 부모대에 그것도 아니면 조상을 거슬러 올라 갔을때 '농민의 자녀'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수십년 전부터 가을 추수기만 되면 여전히 '추곡수매가'조차 해결을 못하여 전국가적인 반복되는 갈등을 빚고 있으니 국가는 국가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제각각 기념일만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답답함을 느낀다. 기념일을 만들고 상주고 잔치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은 양심껏 농작물을 생산하고 소비자는 믿고 구매하며 그 사이에 상호 납득할 수 있는 이윤이 형성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중요할 것이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진전이 없는 현실을 보면서, 기념일만 지내지 구조적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빼빼로 데이'의 요란함에 가려진 농민의 시름을 보면서 그냥 답답함을 토로해 본다. 중요한 것은 기념일도 잔치도 행사도 아니며 '구조적 해결책'임을 이해하고 누군가 이 문제를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