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시기에 예수님께서 찬미 공동체인 교회에 주시는 새로운 계명
김석중 루도비코 신부 / 야음성당 주임
부활시기를 잘 보내고 계시는 신자 여러분, 우리는 매번 미사성제를 봉헌할 때마다, ‘거룩하시도다’(Sanctus)를 노래합니다. 이 찬미의 노래는 영광 중에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찬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는 특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인간들이 모인 공동체이며, 적어도 밝은 세상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큰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부활하여 살아계시는 주님께, 바로 그분께서 부활하신 오늘(주일, 주님의 날)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복음 말씀은 부활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이 아니라, 최후의 만찬 때 사랑하시던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의 말씀(고별사)의 일부분입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언제나 수난하시기 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데 묶어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은 부활시기의 성경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별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알려 주듯이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행동 지침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요한 13,34)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수많은 계명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 계명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관계 유지에 좋은 지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이라고 해서 어떤 병자가 자기 병을 고치지 못하게 막았을 때,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정한 위로의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얼마나 쉬운 내용입니까? 이 말씀 하나로 수 백 가지 계명이나 규칙을 외울 필요도 없고, 매번 율법을 어겼는가를 살펴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린다면 이 새 계명을 실천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실제로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더더욱 미움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여라.”는 이 계명은 죽는 날까지 우리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신자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여라.”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