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선물
김형수 베드로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평화를 뜻하는 ‘샬롬’은 완전한 ‘충만한 상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참된 샬롬의 의미를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는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아무리 개인적으로 온전한 샬롬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가 만족하는 샬롬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샬롬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을 소외시킨다면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의 온전한 평화는 공동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외되거나 빈 부분이 없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한 명이라도 제외된다면 그 공동체는 불완전한 샬롬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든지 공동체 안에서든지, 샬롬은 개인이나 사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 일종의 선물이자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평화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일컫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정형화된 틀에 집어넣거나 나의 입장을 강요한다고 해서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부여하신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부정하고, 너를 바꾸어 나를 만들려는 폭력입니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라는 것을 존중하는 가운데, 너와 나 사이의 빈틈은 성령께서 채워주십니다. 이때 비로소 공동체 안에서 충만하게 꽉 찬 샬롬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일치의 성령께서 평화를 이루어 주심으로서 공동체는 일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도행전에서 일치의 성령을 통해 제자들의 말을 모두 자기 나라 언어로 알아들은 의미입니다.(사도 2, 1∼11 참조)
이처럼 평화와 일치는 성령을 통해서 선사 되는 은총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시기에, 숨으로, 영으로, 바람으로 묘사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완성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앞에서 말한 강요하는 폭력이 아니라, 너를 용서하는 내 안에,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 평화로 채워주셔서 일치하게 하시며, 이러한 평화와 일치가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요한 20, 21∼2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