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온갖 정보들을 입력하고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끄집어 내는 컴퓨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 그분 또한 시시때때로 업그레이드하고, 일정기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시마다 출력 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십니다.
하느님마저도 자신들의 뇌에 입력시키려 드는 사람들, 사람의 생명까지도 자기에게 입력된 정보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생명까지도 자기의 정보에 입각하여 재단하고 평가, 판단하고 짜깁기하여 제 스스로 하느님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인간 생명은 한낱 인간의 지식 안에 입력되어 업그레이드 되거나, 출력하며 만들어 내는 그런 물건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하고 한 인간이 고백하는 참 신앙인의 기준은 ‘일상에서 밤낮으로 만나는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확고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의 첫 번째 서간에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 믿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던져진 선물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지금 부르는 성가, 암송하는 기도문 속의 하느님이 참 하느님이신지, 아니면 우상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게 말해보라! 네가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 나, 너에게 말해주리라!” 이제! 우리는 니체의 이 말에 응답하여 말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너에게 말해주리라!”라고 말입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 6,38)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맺으신 사랑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께서 알려주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ㄴ)라고 아주 간결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사랑의 하느님을 전해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삼위 일체 하느님은 ‘일치의 신비’이시며 우주와 사람을 맺어주는 사랑의 극치이고 실천의 교리임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