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과 성령 강림을 앞두고 있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수난을 앞두고 세족례를 통해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긴 이별의 담화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 계명과 ‘성령 파견’이 주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겐 당혹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 사건 이후 놀랍게도 제자들은 기억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움(요한 14,26 참조)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기억해 냈습니다. 성령에 의한 제자들의 기억의 전달이 복음을 기록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이해와 체험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진리의 성령’을 약속해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그분이 곧 ‘진리의 영’(요한 14,17)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이도 있습니다. 더 확실하게 성령 체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이 결국 성령을 멀리 계신 분으로 만들고 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불같이 뜨거운 체험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매일 살아가듯이 성령께서도 그냥 그렇게 우리들 안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령을 체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줍니다. 제자들이 성령 안에서 기억해 낸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성령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성령은 사랑을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이 모든 이름 - 보호자, 협조자, 동반자, 함께 있는 자 - 은 ‘사랑’이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과 사랑은 같은 말입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눈이 됩니다. 그리고 이 눈을 통해서 우리는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라는 이유는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더욱더 크게 하는 은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