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삶
최요섭 요셉 신부 / 모라성요한성당 주임
우리는 흔히 우리의 관습이나 선입관 때문에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만 고정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자화상 앞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은 우리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고 있는 가톨릭 신앙은 역설(Paradox)의 삶으로써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역설의 삶. 이것은 죽음이‘죽음’이 아니라 오히려‘새로운 삶’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가 어리석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세인들의 통념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구원이요 생명임을 믿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설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삶 역시 역설의 삶이었습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4)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은 분들이 바로 이 땅의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이 땅의 순교자들이 천주교에 입문하고 하느님을 믿은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천주교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된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 정국은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경제적 수탈이 심해지고, 엄격한 신분제도에 기초한 사회질서가 흐트러지고, 사분오열 갈린 정치판도 당쟁에만 몰두하여 민심이 땅에 떨어진 시대였습니다. 이런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 그 말씀에 삶의 의미를 두게 됩니다.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한 순교자들은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 3 참조)고 믿었고“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마태 5, 10 참조)임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이 땅에는 우리를 지켜보시는 103위의 성인이 계시고 124분의 복자가 계십니다. 또한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십자가라는 역설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바로 이 땅의 순교자들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순교자의 후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