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전해주는데 그들은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지도하거나 가르치는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충실한 율법 해석가들이기는 하지만 그 율법의 충실한 실행자들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위선자들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위선을 가르치는 자들이라고 증언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마태 23,3)
자신들의 열심과 신심을 외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특정 행위나 태도들이 실상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와 칭찬을 받기 위한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위선은 항상 겉치레와 허영과 결속되어 있습니다. 선한 것, 참된 것이 없으면서 내면에 들어있는 거짓, 허영, 자만심, 비열한 것 등을 가리기 위해 외적 장식과 포장들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현대의 많은 이들도 내적인 것이 비어 있음을 보정하려는 몸짓으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요?
위선적 태도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야심에 사로잡힐 위험은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라는 평등의 원칙을 주장하면서도 분명히 교회 안에 있는 권위의 원칙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는 권위가 봉사의 차원에서 이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권위가 지속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백성이나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해 봉사하는 권위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예수님의 말씀은 섬기는 자가 다스리는 것이며 그 섬김이란 진실로 형제들을 위한 애정과 선의로 드러나는 봉사라야 합니다. 이럴 때 봉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권위를 가지며 남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깊은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을 때 위선은 사라질 것입니다. 지도자들이나 남을 가르치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결점, 나약함까지 인정하며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의식할 때 위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