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부산교구 수호자이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라는 소식을 전하자 마리아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고, 시골 처녀가 하느님의 모친이 되었으며 교회가 만들어지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말씀은 ‘주님의 종’ 이라는 주어와 ‘이루어지다.’라는 서술어가 중심이 됩니다.
먼저 ‘주님의 종’은 굴종이 아니라 자발적 순명을 말합니다. 순명과 굴종의 차이를 요한 묵시록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대천사 미카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놀라 천사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하자 대천사가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지 마라. 나도 너와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 하느님께 경배하여라.”(묵시 19,10)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하느님 말고는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선에 벗어나면, 분명히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함부로 무릎을 꿇고 굴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술어 ‘이루어지다.’는 성모님의 온 생애를 관통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뜻이 당신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당신 어머니처럼 당신의 공생활 내내 이 동사를 화두처럼 품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알기 위해 광야로 가셨고,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수동태의 이 동사는,매사에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느님과 거래하고 때로는 하느님을이용하기까지 하는 우리들에게 매서운 채찍이 됩니다.
나를 비운 자리에 당신의 뜻을 채우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한 주간, 그리고 성모님께서 그러셨듯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곰곰이 되새기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