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밀과 가라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여기서 밀은 곳간에 모아들일 귀중한 삶을, 가라지는 뽑아 불에 태워져야 할 잡초, 즉 세상의 욕망이나 인간적인 나약함, 자신의 악습이나 부정적인 언행들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에서 눈여겨볼 점은 밀이삭과 더불어 가라지도 자라게 내버려 두는 주인의 행동에 있습니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인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밀이 가라지에 눌려 전혀 수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답변이며 동시에 오늘날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빚어지는 갈등과 하느님의 부재를 말하는 이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밀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인내는 하느님 편의 승리를 즉시 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급함을 깨우치게 하며, 끝까지 기다리는 참을성을 키우도록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에도 여전히 심판보다는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라지가 좋은 씨앗인 밀과 더불어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악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인내와 자비를 드러내는 사랑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밀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혹 가라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스스로 가라지라고 생각해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믿으며 삶의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도록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거나 잠든 사이에 누군가 가라지를 뿌릴지도 모르니 깨어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며 수시로 우리 삶을 신앙 안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