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 혹은 세 개의 세상
조영만 세례자 요한 신부 / 메리놀병원 행정부원장
1571년, 지중해 동쪽‘키프로스’섬을 침략한 이슬람의 위협에 맞서 비오 5세 교황은‘그리스도인의 무기’인 묵주기도를 모든 로마 시민들이 바쳐줄 것을 요청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이끄는 함대가 끝내‘레판토 해전’에서 격침당하는 것을 보며, 이 기적적인 10월 7일의 승전은 마리아의 중재에 의한 것임을 기억하기 위해‘승리의 어머니날’로 제정하고, 이것이 훗날‘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묵주기도의 어머니’축일로 발전하기에 이릅니다.
1957년 당시 3만의 교구민이 전부이던 경남 지역에‘부산 대목구’가 설정될 무렵‘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받은 최재선 주교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 앞에서도 성모님께 우리의 운명을 내맡기자며‘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교구를 봉헌하였고, 이 의탁이 오늘 교구 수호자 축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500년 전 사람들 그리고 50년 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맞선 그리스도인들의 방식은 분명합니다.‘신뢰와 의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입니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루고자 하시는 세상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에 신뢰를 둘 뿐 아니라 그 성취에 전적으로 의탁하며 이를 끊임없이 고백합니다.
불의한 세상과 자본의 겁박 앞에서, 도무지 꿈쩍하지 않는 바위 같은 절망 앞에서, 교묘해지는 유혹과 갈수록 무디어지는 일상 앞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채 날름거리는 욕망의 난장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힘으로 온전히 저항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잡았으며 저주를 버리고 묵주를 잡았습니다.
나 아닌 그분의 것에 신뢰를 두고 욕망이 아닌 희망에 의탁합니다. 재주와 재물에 기대지 않고, 성공과 발전에 기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성모님이 살고자 하는 세상입니다.“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말했을 때, 성모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두 개 혹은 세 개의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의 세상에서 끝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