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05호 2013.03.03 
글쓴이 예정출 신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님께로

예정출 가브리엘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센키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에 나오는 장면을 기억한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오스티아 항구로 향하던 베드로 사도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신다. 이 유명한 말은 로마 아피아 가도에 있는 ‘쿼바디스 성당’ 벽면에 새겨져 있다. 내가 신앙인으로서의 내 삶에 충실하지 못할 때 나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모습이 된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뵙고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결국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은 세상의 가르침에 따르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에 더 매여 살았다. 사도들은 세상에 논리를 따르기보다 주님 말씀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자신의 뜻보다도 하느님의 계명과 가르침에 더 충실하였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항상 많은 것에 매여 있다. 세상에 매여 있고 감각에 매여 있고, 현재와 미래의 여러 걱정거리에 매여 있다. 게다가 우리는 쉽게 나태해지고 쉽게 타성에 젖기도 한다. 좋은 길을 가다가 나쁜 길에 들어서기도 하고, 바른 삶을 살다가도 그릇된 길에 빠지기도 한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악이 악인 줄도 모른 채 무뎌진 양심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복음은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신앙이 주는 복된 시간 안에 머무르라고 한다. 피정은 일종의 그런 요청이고, 사순절은 일종의 그런 시기이다.

사순절은 우리 마음의 회개와 생활의 변화를 촉구한다. 특별히 내 신앙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 결심을 하게 한다. 신앙은 이처럼 회심을 요구하고 쇄신을 지향한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님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돌아서게 한다. 우리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신앙을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은 가벼운 말보다도 깊이 있는 실천을 더 요구한다. 회개하지 않는 삶은 멸망이라고 했다. 그런 삶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잘려나가는 삶이 될 것이다. 신앙생활은 때때로 시련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을 잘 극복한 후 되돌아보면 특별한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부활의 기쁨도 사순 시기의 참된 희생과 보속을 통해 마련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사순절, 우리 일상이 주님 말씀으로 되돌아서고, 믿음으로 다시 충만해지는 그런 복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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