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면서 동시에 자선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빛으로 오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선구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을 기다리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회개의 표시로“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도 그렇게 나누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루카 3,11∼12 참조) 회개의 진정성은‘자선’으로 나타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선’이란 무엇입니까? 남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랑스럽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선은 한자로‘사랑할 慈, 착할 善’이라고 쓰는데 이 글자에는 어머니의 사랑, 도덕적 최고 단위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선을 베풀되 아까워하지 말며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러한 자선은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주며,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고 말씀하십니다.(토빗 4,7∼16; 12,9 참조)
그런데 자선은 꼭 물질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을 불어넣는 것도 아주 훌륭한 자선입니다.
언젠가 SBS에서 노숙자들에 대해 방영하는 걸 봤습니다. 영등포역과 서울역 주변엔 저녁때가 되자 여기저기서 남녀 노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30대 초반도 있었고, 4∼50대도 수두룩했습니다. 뭘 하든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육체가 병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아 일을 할 의지와 살아갈 낙을 스스로 놓아버린 것입니다. 마음의 병이란게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최소한의 신앙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고 주님을 기다리며 힘을 내고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 49,15)
자선 주일이라 해서 돈 몇 푼 보태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이런 희망, 이런 신앙을 전해 주는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