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식물 키우는 재능이 많이 부족합니다. 기본적인 관심에 더해서 각 식물의 특징 등을 습득하고 적용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매번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는지 가끔 겨우겨우 생명력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는 가운데 배운 작은 가르침이 하나 있습니다. 식물을 돌볼 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믿음과 기다림’이라는 사실입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믿고 기다리면서 애정을 줄 때 식물은 그동안 숨겨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혹시 잎이 마르고 꽃이 피지 않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고 잘라버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겉’만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 쉽게 누구와의 관계를 단절해 버립니다. 나름 기다렸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좀 더 자비로운 사람(루카 6,36)이 되어야 합니다. 분노에는 ‘더디시지만’ 자애가 넘치시는 하느님(시편 103,8)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없이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집 떠난 작은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버지(루카 15장)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품으로 되돌아오기까지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기다림으로 ‘인해’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는 한순간도 심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성급한 판단과 단절을 버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자비로운 기다림’을 우리도 누군가에게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도 재배인은 포도나무들보다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에 더 많은 애정을 줍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1년을 다시 기다립니다. 우리도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평소에 무관심했고 거리를 두었던 그리고 용서하지 못했던 ‘가족과 이웃’인 ‘무화과나무들’에게 ‘자비로운 기다림’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혹시 아나요? 그 기다림 끝에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을지 ….